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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저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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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Jan 2021 06:24 #571 by lkb0129
바울 사도는 롬7:9절에서 이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를 언급하고 있다. 빌3:6절에서 바울은 율법에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만큼 대단한 율법사였는데 이러한 바울이 이전에는 율법을 깨닫지 못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언제인가? 그때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기 이전 율법 아래 있을 때를 말하는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의에 이르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때를 말한다.

전에 라는 헬라어는 ποτε(포테)는 이전이라는 뜻으로 이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는 부사이다. 바울의 현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사람은 죽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동시에, 지금은 율법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러나 이전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므로 의에 이르는 줄 알고 혼신을 다해 율법을 지켰는데 율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보니, 롬7:23-24의 말씀대로 의에 이르기를 갈망해서 선한 율법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의롭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은 이미 이 거룩한 율법을 다 범한 악인으로 들어나게 되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절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절규는 율법을 다 범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 악인에게 해당된 것이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롭게 된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롬7:21-24절을 이미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바울이 자신에게 남아 있는 죄의 근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영적인 갈등을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롬7:21-24절의 동사들을 현재 동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뒤의 문맥을 살피지 않고 단지 현재 동사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것이다. 이전 율법을 깨닫지 못했던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면서 특히 21-24절에서 현재 동사를 쓴 이유는 영어는 물론 헬라어에서도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실감나게 표현할 때는 종종 현재 동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문법에 근거한 것이다.

빌3:6절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기록되었는데 여기 박해하다의 동사는 현재 분사 형이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으로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잡혀서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 감옥에서 기록한 말씀이다. 그런데 율법에 흠이 없는 율법사로서 교회를 핍박했던 과거의 일을 상기하면서 현재 분사 형으로 쓴 것이다. 이 구절에서 이렇게 현재 분사(현재 동사)를 사용했다고 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바울이 옥중에서 여전히 계속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딤전1:15절에"...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할 때 여기 동사도 현재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디모데 전서 기록 당시에도 바울은 여전히 죄인 중에 괴수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딤전1:13절부터 16절까지의 전후 문장을 상고하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3절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그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였으나 16절에 그러한 내가 긍휼을 입어 구원을 받게 되었고, 사도의 직분까지 받게 되었다고 증거 한다. 그러므로 현재 동사를 썼다고 해서 디모데 전서 기록 당시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을 비방 하고, 박해하고, 폭행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한다면 앞, 뒤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실감나게 현재 동사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문법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더욱이 결정적으로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 의롭게 되려고 혼신을 다해 율법을 지킬 때는 바울 자신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서 죄의 종이 된 때라 했고(롬7:10-) 이처럼 육신에 속했을 때는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었다고 롬7:5절에 기록했다. 롬8:9절에서 바울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고, 또 그의 서신 고전2:14절에도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유다는 그의 서신 유1:19절에서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확언 했다.

이러한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바울은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 의롭게 되려고 혼신을 다해 율법을 지킬 때는 자신은 성령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닌 육신에 속한, 죄 아래 팔려서 죄의 종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바울이 이대로 생을 마쳤으면 지옥 불에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로 이어서 25절 마지막 절 초두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 감사하는 구절을 강조하기 위해서 문장 초두에 기록했지만 문맥으로 보면 감사한다는 이 말은 뒷부분에 두고, 롬8:1절의 첫 글자로 나오는 αρα(하라-의심의 여지없이, 이와 같이)라는 접속사와 연결해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이같이 연결하고 다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악한 나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렇게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나를 무죄하게 하시고, 죽었던 나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리셔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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