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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사는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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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Oct 2019 11:17 #531 by lkb0129
갈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했다.

이 구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롬6:6-7절에 의하면 우리의 옛 사람, 곧 죄의 몸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함께 죽었고, 멸해지고 소멸된 것을 뜻 한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롬6:5절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어 함께 우리의 죄의 몸, 죄의 사람이 죽고 완전히 멸해 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죄의 몸, 죄의 사람이 죽고 멸해졌다는 것은 갈5: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의 말씀대로 죄의 근성까지도 멸해지고 소멸된 것을 의미 한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보통 자아가 죽은 것으로 설명하는 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우리의 옛 사람, 죄의 몸, 죄의 사람이 죽었다고 해야 성경적으로 맞는다.(롬6:6) 이렇게 죄의 몸, 죄의 사람이 죽고 멸해졌기 때문에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롬6:7절 “이처럼 (죄의 사람이) 죽은 자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의 말씀대로 모든 죄에서 깨끗이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고, 그리고 이렇게 의롭게 된 자만이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과 합해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말씀 한다. 다시 말하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 죄의 몸, 죄의 사람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멸해졌기 때문에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더 이상 옛 사람, 곧 죄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롬6:5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되어 죄의 사람이 죽고 멸해졌으면 마찬 가지로 우리도 그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과 연합되어 그와 함께 살아나서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사는 것은 더 이상 죽고 멸해진 죄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부활과 함께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신 생애를 기록한 4복음서를 보면 육체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삶은 성령 하나님으로 사시는 삶이었음을 증거 하고 있다.

예수께서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 될 때부터 성령으로 되었다고 마1:18절에 기록 했고, 소년 시절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 가셨고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실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고,(눅4:18) 요3:34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시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주님은 늘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했고,(눅10:21)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행하셨음을 밝히고 있다.(눅4:14) 이와 같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과 일체가 된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답게 흠과 티가 없이 그리고 모든 면에 부족함 없이 사시고 행하셨음을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체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우리에게 내재해 계시는 성령 하나님에 의해 능히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 하반 절을 보면 내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이러한 우리의 삶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 한다. 또한 이 말씀은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음을 역으로 증거하는 것이 되겠다.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라는 말은 믿음에 잠겨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믿음이 충만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데반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행6:5절에 소개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서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행하심이 놀랍게 나타난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믿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행하심이 넘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충만할 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성령 충만)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행하시는 삶을 넘치게 펼쳐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증거 한다.

히11장에서는 선진들의 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사시고 행하시는 삶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선진들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동적인 사심과 행하심은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그들의 충만한 믿음 안에서 전개 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시고 행하신 사역을 소개할 때 마다 언제나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히11: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했고 히11장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이어서 히11장17-19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이미 그의 자손으로 임할 메시야, 곧 그리스도는 이삭으로 말미암는다는 약속을 받은 그 외아들 이삭을 믿음으로 번제물로 드렸다는 것이다. 19절에서는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번제물로 드린 그 믿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피를 쏟은 죽은 시체를 제단에 올려놓고 불태워서 드리는 번제물로 그렇게 이삭을 바쳐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이삭을 다시 살리셔서 메시야와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삭으로 말미암는다는 그 하나님의 변찮는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 성숙된 충만한 믿음으로 드렸다는 것이다.

이 장면을 기록한 창22:9-12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의 산, 한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기록되었다. 12절 후반에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의 말씀은 약속의 아들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아니하고 번제물로 드려도 이 이삭을 다시 살리셔서 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성숙된 충만한 믿음을 크게 기뻐하신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이 믿음에 즉각적으로 응하셔서 하나님께서 사시고 행하심을 나타내셨는데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게 하시고 그 이후 이삭의 자손, 곧 하나님의 백성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창하게 하셨고,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가 그의 38대 자손으로 세상에 강림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지금도 주님과 그 말씀에 대한 성숙된 충만한 믿음 안에서 내재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행하시는 놀라운 삶을 펼쳐갈 수 있게 하신다.

이제부터는 우리들에게 내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능력, 곧 성령의 충만하심이 나타나는 성숙된 충만한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엡4: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사람을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펼쳐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성숙한 믿음, 충만한 믿음 안에서 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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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곧 주님과 합해서 주와 한 영이 됨을 의미 한다.(고전6:17) 어머니의 태속에 한 몸으로 잉태되어 어머니의 분신으로 태어난 아이가 학습을 통하지 않고도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참으로 알게 되는 것과 같이 주와 한 영이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참으로 알게 된다.(고전2:10)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영이 되어서 주님을 참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은 하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앎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야 말로 성숙된 충만한 믿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백부장이 예수께 나와서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신음하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시자 그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했을 때 주님은 백부장의 말을 들으시고 놀랍게 여기고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 충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고는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다고 기록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심과 그의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참으로 아는 앎에 이른 백부장의 그 성숙된 충만한 믿음을 기뻐하신 예수님은 그 백부장의 믿음에 반응하여 이르시기를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다는 것이다.

결론;
오늘 날도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참으로 아는 앎에 이른 그 성숙된 충만한 믿음의 성도들을 통해서 내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행하시는 삶을 경험하게 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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