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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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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Dec 2018 16:40 #490 by lkb0129
롬8:1-3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이 본문 구절의 해방하다의 헬라어 단어 ελευθεροω(엘류데로오)는 자유롭게 하다로 번역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더 쉽다. 이 말은 죄와 사망의 억매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영원히 자유롭게 된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사람이 멸해지고, 부활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영원히 해방되고 자유롭게 된 것을 의미 한다.

이처럼 계1:5절의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는 말씀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의 피로 죄 사함 곧 죄 없이함을 받음으로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것과 그리고 요5:24절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 되었다.”는 증거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옯긴 바 되어 영생하게 된 성도들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으므로 의와 생명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이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까지 자유롭게 나아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었음을 말씀 하는 것이다.

본문 1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 사함 받아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유죄 판결이 없다는 것이고,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무죄하다는 것이다. 롬8:33-34절에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단죄 하겠습니까? 말씀한다. 그리고 롬6:22절에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의 구절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영생하게 되고 무죄하게 된 우리 성도들은 본문 2,3절의 말씀대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 말씀들을 요약해서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되고 무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이제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까지 자유롭게 나아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죄책감에 얽매이고 죄인의 굴레를 못 벗어나서 평생 죄와 사망의 억매임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죄의 근성이 남아 있어서 죄를 짓게 되는 죄인이라고 쉽게 말하는 신자들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죄책감과 죄인의 굴레를 못 벗어나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상대적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지배하시는 자유와 평강과 생명으로 왕 노릇하는 천국의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렇게 아직도 죄의 근성이 남아 있어서 죄를 짓게 되는 죄인이라 할 때 그 성경 구절의 근거를 롬7:21-24절이라고 강변 한다. 롬7:23-24절을 요약하면 선을 행하기 원하는(선한 율법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어 그 악이 나를 사로잡으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절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는 절규는 죄성으로 인해서 또 다시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죄인의 모습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절규를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죄성으로 인해서 또 다시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죄인이 돼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절규하는 상태는 롬8:1-2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피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무죄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나서 영생하게 된 그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엄청난 오류를 범하게 되는가? 그것은 롬7:9-25절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롬7:9절에서 이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를 언급하고 있다. 빌3:6절에서 바울은 율법에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할 만큼 대단한 율법사였는데 이러한 바울이 이전에는 율법을 깨닫지 못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언제인가? 그때는 율법 아래 있을 때를 말하는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의에 이르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때를 말한다.

전에 라는 헬라어는 ποτε로 이전이라는 뜻으로 이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는 부사이다.

바울의 현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사람은 죽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동시에, 지금은 율법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닫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러나 이전,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므로 의에 이르는 줄 알고 혼신을 다해 율법을 지켰는데 율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보니, 롬7:23-24의 말씀대로 의에 이르기를 갈망해서 선한 율법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의롭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은 이미 이 거룩한 율법을 다 범한 악인으로 들어나게 되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절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절규는 율법을 다 범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 악인에게 해당된 것이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롭게 된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롬7:21-24절을 이미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바울이 자신에게 남아 있는 죄의 근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영적인 갈등을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롬7:21-24절의 동사들을 현재 동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뒤의 문맥을 살피지 않고 단지 현재 동사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것이다.

이전 율법을 깨닫지 못했던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면서 특히 21-24절에서 현재 동사를 쓴 이유는 영어는 물론 헬라어에서도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실감나게 표현할 때는 종종 현재 동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문법에 근거한 것이다.

빌3:6절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고 기록되었는데 여기 박해하다의 동사는 현재 분사 형이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으로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다가 잡혀서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 감옥에서 기록한 말씀이다. 그런데 과거 율법에 흠이 없는 율법사로서 교회를 핍박했던 과거의 일을 상기하면서 현재 분사 형으로 쓴 것이다. 이 구절에서 이렇게 현재 분사(현재 동사)를 사용했다고 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힌 바울이 옥중에서 여전히 계속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딤전1:15절에"....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할 때 여기 동사도 현재형을 쓰고 있기 때문에 디모데 전서 기록 당시에도 바울은 여전히 죄인 중에 괴수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딤전1:13절부터 16절까지의 전후 문장을 상고하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3절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그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였으나 16절에 그러한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다.

그러므로 현재 동사를 썼다고 해서 디모데 전서 기록 당시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을 비방 하고, 박해하고, 폭행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한다면 앞, 뒤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실감나게 현재 동사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문법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더욱이 결정적으로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 의롭게 되려고 혼신을 다해 율법을 지킬 때는 바울 자신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서 죄의 종이 된 때라 했고(롬7:10-) 이처럼 육신에 속했을 때는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었다고 롬7:5절에 기록했다. 롬8:9절에서 바울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고, 또 그의 서신 고전2:14절에도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유다는 그의 서신 유1:19절에서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확언 했다. 이러한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바울은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 의롭게 되려고 혼신을 다해 율법을 지킬 때는 자신은 성령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닌 육신에 속한, 죄 아래 팔려서 죄의 종이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바울이 이대로 생을 마쳤으면 지옥 불에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로 이어서 25절 마지막 절 초두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 감사하는 구절을 강조하기 위해서 문장 초두에 기록했지만 문맥으로 보면 감사한다는 이 말은 뒷부분에 두고, 롬1:1절의 첫 글자로 나오는 αρα(의심의 여지없이, 이와 같이)라는 접속사와 연결해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게 된다.

이같이 연결하고 해설해서 이 부분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멸망할 수밖에 없는 악한 나를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이와 같이(αρα)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무죄하다고 선언하시고 죽었던 나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리시고 구원하셔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신(롬8:1,2)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결론;
그러므로 롬7:9-25절의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의 피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하시고, 무죄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아나게 하므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자유하게 된, 그래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충만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육신에 속한 자 성령이 없는 자로서 율법을 다 범한 죄인이기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라고 울부짖고 절규할 수밖에 없는 악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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