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 은혜 나눔방은 성도들 간에 은혜를 나누는 목적으로 실명 등록 후 본 교회 등록교인에 한해 글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 목적에 적합지 않은 내용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구인/구직, 렌트, 룸메이트, 매매 등의 광고는 나눔장터 게시판 에 올리시기 바랍니다.
- 로그인 하신후 "새글쓰기" (NEW TOPIC) 버튼을 누르셔서 새로운 글을 올리시면 됩니다.

성경 전체를 꿰뚫는 맥

More
04 Apr 2016 20:17 - 05 Apr 2016 14:42 #279 by lkb0129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창조 권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고, 땅을 정복하는 왕권을 주시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 권과 왕권을 주시고 마련해 주신 에덴동산에서 지상 낙원을 건설하는 사명을 부여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정하신 인간의 수가 차면 순식간에 변화하고 들려올라 가서 하나님 왕국의 최종 목표인 영원무궁한 나라를 완성하시는 계획을 하시고 섭리 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시33: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살전4:17)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 듯 하나님의 의도하심에서 벗어나므로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 되었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죽게 되고, 그리고 사망에 처한 인간들에 의해서 추진된 지상 낙원은 파멸할 수밖에 없고, 오늘 날과 같은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죄악 된 세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동반 파멸할 수밖에 없는 그의 택한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구원 하셔서 초대 교회와 같은 지상낙원에 이어서 하나님의 최종 목표인 영원무궁한 나라를 완성하시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의도하심에서 빗나간 실제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전부를 부으시는 사랑으로(롬5:5) 만드셔서 하나님처럼 살고 행할 수 있게 하심과 동시에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이 계속 함께 하시면서 사랑하시고 힘이 돼 주셔야만 하는 그런 의존적 피조물임을 보여 준다. 의존적 피조물이란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 함께 하시면서 사랑하시고 힘이 돼 주심에는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필히 요청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 안에 있으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속 함께하시면서 사랑하시고 힘이 돼 주실 때 얼마든지 지상낙원을 건설하고 장차 이루어지는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까지도 완성할 수 있게 되는데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필히 요청되는 요소는 하나님을 전적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강요하거나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만일에 하나님이 이를 강요하거나 강제하게 된다면 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파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면 인간과 함께 건설하려는 지상낙원도 그리고 장차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나라도 완성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두시고 이 열매를 따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느냐 마느냐의 단순한 문제 보다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두신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내 안에 거하라는 하나의 표시이고 사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거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떠날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일종의 표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롬1:20절)인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실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하나님과는 단절 되고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결국 아담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독자의 길을 가겠다고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하나님을 떠났던 것이다. 이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왕권과 창조 권을 발휘하여 지상낙원을 이룩하고, 그래서 인간의 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배은망덕한 불신앙의 모습을 보여 준다. 이것이 인간이 과녁에서 빗나간 것이고 인류를 대표하는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진 것이다. 그래서 이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는 사망에 처하게 되었다. 롬5: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다.

이렇게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죄를 짓게 되고 파멸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둘째 아담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 되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회복됨에 따라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들과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힘이 돼 주시므로 지상낙원(교회시대)과 이어지는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나라를 완성하시게 된 것이다.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전적 신뢰하는 믿음에 굳게 서 있었으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떠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꾀가 많은 사탄은 실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아담을 유혹했다. 왜냐하면 의존적인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이 되겠다고 할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할 수 있고, 종국에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은 하나님이 되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결국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하나님을 떠났던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신을 거역하고 떠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여전히 사랑하셔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게 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 영원히 연합할 수 있게 하신 이 크신 은혜에 감격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났던 본질 적인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이제는 하나님을 전적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연합된 것을 확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구원의 서정에서는 이 회개와 믿음을 믿음(회개) 이렇게 같은 선상에 나열 한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회개한 자이고 회개한 자는 믿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하나님과 연합해서 하나님 안에 영원히 있게 된 것을 믿음으로 확정한 우리는 사랑하시고 함께 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는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얼마든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늘의 삶과 사역을 능히 펼쳐갈 수있게 되므로 지상낙원과 영원무궁한 나라를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엡1:4,5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말씀 한다. 이 구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이 안이란 전치사 εν(엔)에 주목하기 바란다. 엡1장에서만 그리스도 안이란 말이 12번이나 나오고 바울 서신 전체에서는 165번이나 나온다. 우리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되었다는 것을 비롯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이란 말이 이만큼 많이 씌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의존적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나님 안에 있기를 거부하고 떠나므로 죽게 되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이 된 성도들이 이제는 하나님 안에 영원히 있게 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롬6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때 우리의 죄의 사람이 죄성까지(갈5:24) 포함해서 함께 죽어 멸해지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 함께 살아나서 하나님과 연합되므로 하나님 안에 영원토록 있게된 사실을 확정적으로 말씀 하고, 롬8:1절에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있게 되고 연합된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무죄한 자라고 했고, 고후5: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하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했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 라고 선포한 성령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아직 까지 남아 있는 죄성에 의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용서 받은 죄인이라고 하는 의미는 일점일획도 결코 포함하고 있지 않는다.

요일3:6,9절에서는 이렇게 하나님 안에 영원히 있게 된 하나님의 자녀는 다시는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범죄 행위를 결코 범하지 않는다고 기록 하였다. 6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했고 9절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났음이라.” 했다. 이처럼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영원히 확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그러한 죄를 또 다시 범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요일3:18절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이러한 범죄를 다시 범할 수 없는 것은 악한 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자녀들을 아에 만지지도 못하게 성령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이라고 증거 한다.

히6:4-6에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들은 한번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혜를 입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들이 타락하게 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이 히6:4-6절의 말씀은 어법상 반어법에 해당되는 구절이다. 반어법은 강한 부정의 문장을 사용해서 긍정을 강하게 표현하는 어법이다. 이 반어법을 사용한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죄 사함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영원히 있게 됨에 따라 영생을 얻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또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하나님을 아주 떠나는 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는 죄, 주님을 다시 못 박아 현저히 욕보이는 그러한 죄를 결코 범할 수 없음을 강하게 말씀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되고, 연합되므로 하나님 안에 영원히 있게 된 것을 믿음으로 확정한 성도들, 곧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고 말씀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들은 다시는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본질적인 죄는 결코 범할 수 없지만 입혀주신 거룩한 그리스도의 옷(롬13:14), 흰 옷(계3:5)을 떼 묻히고 더럽힐 수 있음을 성경이 증거 한다.

계7:9절에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천성 예배를 드리는 광경이 나온다. 천성 예배를 드리는 큰 무리가 입은 거룩한 흰옷은 우리에게 입혀 주신 그리스도의 옷, 흰 옷, 두루마기와 똑 같은 옷이다. 그런데 계22:14절에서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고, 요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기록 되었다. 이 두 구절에서 더럽혀진 두루마기를 깨끗이 빨고, 더러워진 발을 깨끗이 씻는 다는 말씀이 나온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영원히 확정된, 그래서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들이라도 세상에 살 동안 우리에게 입혀 주신 거룩한 흰 옷을 더럽히고, 또 이미 목욕해서 온 몸이 깨끗하지만 발이 더러워지게 됨을 말씀 하고 있는 것이다. 벧후2:22절에서는 이렇게 더럽히는 것을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면 입혀주신 흰옷을 더럽히고 온 몸이 깨끗하지만 발을 더럽히는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육신의 요구, 본능(죄성이 아님)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내재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거스리고, 육신만을 좇아 살아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도 하고, 불평과 원망도 하게 되고, 나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죄들로 흰옷과 발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5:1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니라." 는 말씀대로 성령을 따라 살면 다시 말하면 성령을 좇아서 육신을 의로운 산 제물로 드리면 흰옷과 발을 더럽히지 않고 능히 성화(성결)를 이루며 살고 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6: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영원한 삶)을 거두리라." 고 했다.

성령을 거스리고, 육신만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기는 사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 쾌락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자, 그리고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사람을 성령님 보다 더 내세우는 인본주의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영원히 확정된 성도들이라도 이러한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입혀 주신 거룩한 옷과 발을 더럽힌 채로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령을 외면하고 육신만을 좇아 살므로 그리스도로 입혀 주신 거룩한 옷과 깨끗케 해 주신 발을 더럽힌 채로는 하나님이 찾으시니 예배도 드릴 수 없고, 기도 응답도 기대할 수 없고, 믿음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무기력한, 심한 경우는 죽은 믿음이 된다. 때문에 성도들은 늘 성결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결(성화)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요일1:7절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영원히 확정된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살아갈 때 사랑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힘이 돼 주시므로 죄로 더럽혀진 흰 옷과 발이 깨끗케 될 뿐만 아니라 능히 성결(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이러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주님처럼 하늘의 삶과 사역을 능히 펼쳐가게 해서 지상낙원을 이룩하고 장차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는 전 성경을 꿰뚫는 맥을 잘 표현하고 있다. 둘 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아버지를 떠나 살 때 허랑방탕 타락하게 되고 죽게 되었다고 했다.(눅15:13,17) 그러나 이 둘 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버지를 떠났던 것을 뼈저리게 회개하고 돌이켜서 믿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할 때 아버지의 아들의 자리를 회복하게 되고 또 아버지의 모든 것을 마음 껏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회개라는 단어 שוב(슈브)는 자기 잘못을 통회하고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겔18:30,31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שוב-슈브)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하나님 안에서)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했다.

이렇게 하나님을 거역한 떠난 범죄 행위로 죽게 되고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그러한 범죄 행위를 뼈저리게 통회하고 회개하므로 속죄함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안에 영원히 있게 되고 연합 된 것을 믿음으로 확정한 이러한 회개와 믿음을 단회적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회개와 믿음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고 단 한번만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탕자의 예) 다른 말로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거역했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서 속죄함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영원히 있게된 성도들,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된 하나님의 분신 같은 자녀들은 회개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할 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고 엡3:20절에서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이시라고 말씀 한다.
Last Edit: 05 Apr 2016 14:42 by lkb0129.

Please Log in or Create an account to join the conversation.

Moderators: syyoonyschaeb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