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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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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Mar 2016 16:43 - 04 Mar 2016 05:07 #260 by lkb0129
성경 요2:13-22; 4:20-26을 반드시 읽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계실 때의 성전의 기능은 희생제물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가리어지고 그리고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러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게 하는데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성전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죄악을 범하므로 하나님은 이미 떠났고 성전의 그 기능은 마비 되었고 형식만 남은 죽은 성전이 되었다.

이러한 성전에서 유월절에 예배(제사)를 드리기 위해 각처에서 순례자들이 몰려 왔는데 이 순례객들에게 성전세로 바치는 세겔을 환전해 줄 때 높은 수수료를 받았고 또 제물을 실제 가격보다 고가로 팔아서 큰 이문을 남기는 장사를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기능이 마비된 성전은 장사하는 집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고 하시면서 세겔로 환전하는 환전 대를 뒤 엎으시고 그리고 매매하는 제물들을 노끈으로 만든 체찍으로 몰아 내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하나님이 없는 기능이 마비된 죽은 성전을 단지 정화해서 그 기능을 정상으로 회복시키시려는 의도 보다는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 이 성전을 너희가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것을 보면 성전 정화 작업은 단순한 성전 정화만이 아니고 그림자와 모형(모조품)의 참 실체가 되시는 예수께서 행하신 이러한 일들은 모형인 성전과 성전 예배는 폐하여 지고 종결됨을 알리는 표적(표시,사인) 행위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이 성전을 너희가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것은 당시 물리적인 성전을 지칭하신 것이 아니고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으로서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사흘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전을 너희가 헐라고 하시고, 환전 대를 뒤 엎은 것은 모형인 성전의 참 실체가 임 하였으니 성전도 폐하여 지고 성전 세로 세겔을 바치는 것도 종결되고 더 나아가서 제물들을 노끈이 달린 체찍으로 성전 밖으로 몰아내신 것은 성전 예배시 백성들의 죄를 덮기 위해서 수 많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는 제사 의식도 폐하여 지고 종식됨을 알리는 표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렇게 요2:13-25절에서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 했던 성전과 예배시의 모든 희생제물은 참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셨으니 성전도 폐하여 지고 모든 희생제물 드리는 것도 종결됨을 표시 행위로 알리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참 실체를 통한 진정한 제사, 예배는 어떠한 예배인가? 첫 언약의 그림자의 참 실체이신 예수께서는 요4:20-26절에서 참 예배함의 실제가 어떠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요4:20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우리들은 그리심 산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3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말씀하시고는 다시 한 번 강조해서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하셨다. 23절에서 찾으신다는 헬라어 ζητεω는 찾다. 원하다. 요구하다의 뜻이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는 말씀의 의미는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므로 그림자요 모형에 불과한 그리심 산과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는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였지만 그러나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이때는 아무리 높은 제단에서, 그리고 웅장한 성전에서 많은 제사장들이 수천, 수만의 제물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려도 더 이상 하나님이 찾지 아니하시는 폐하여야 하고 종결해야 할 예배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고 하신 때는 어느 때인가? 모형인 성전과 그림자인 모든 제물들의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신 때부터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정점으로 한 전후 모든 때, 곧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이 때라는 것이다.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완성하신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찾으시고 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되고 완성된 예배를 드릴 때가 바로 이 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라는 말은 절기와 안식일 등 정해진 날 뿐만 아니라 무시로 언제나 드려지는 예배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 주께서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라고 하신 말씀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은 장소에 구애됨 없이 어느 장소에서나 할 수 있는 예배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고 원하시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글 개역성경에 신령과 진정(진리)이라 번역한 말의 원문 직역은 성령과 참 실체(πνευματι και αληθεια-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이다. 진정, 진리라고 번역한 αληθεια--알레데이아-란 말의 이 문장에서의 뜻은 진리이기 보다는 그림자의 반대되는 참된 것, 사실 등을 말한다. 요4:23에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이라 할 때의 참으로라는 단어도 αληθεια이고 히9:24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의 ‘참 것’ 이라는 단어도 αληθεια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모조품과 그림자가 아닌 사실, 참 것, 참 실체라는 뜻이다. 그리고 두 단어 앞에 접두 된(εν-엔)이란 단어는 안에, 내재란 뜻을 가지고 있다. 헬라어 본문의 영어 번역 모든 역본에서도 in spirit and in truth 라고 했는데 우리 말 번역에는 안에(εν-in)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번역자들의 큰 실수 이다. 주님 안에, 성령 안에, 예수 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그리스도 안에 라는 εν이 들어가는 이런 내용의 말씀이 바울 서신에만도 165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이 구절 말고는 거의 다 εν이라는 전치사를 안에, 안에서 라고 직역을 했다. 물론 εν이 빠진 πνευματι και αληθεια-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만으로는 ‘성령과 진정으로’ 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 단어 앞에 εν이 있는 이상 이 전치사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직역해서 “안에서” 라고 했어야 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의심을 품고 있다. 어떻든 εν πνευματι και αληθεια의 우리말의 직역은 성령 안에서 그리고 참 실체 안에서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성령 안에서 그리고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것이다.

히9:12의 말씀 그림자인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참 실체이신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했다. 이 말을 해설하면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는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단번에 완성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이 세상에 살 동안 입혀 주신 그리스도의 옷, 흰옷이 더러워지고, 또 온 몸을 깨끗이 했지만 세상에 다닐 동안 더러워진 발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지금도 깨끗하게 해 주시는 속죄제물이 되신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고 모든 말씀들을 역동적으로 실제화 하고 실행하시고 체험케 하시고 힘주시는 성령 하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배를 찾으셔서 영광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보좌 앞에서 성령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모든 성도들이 성결케 되고, 실재로 실행케 하시는 성령에 의해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고 참 기쁨과 뜨거운 감격으로 찬양하며 경배를 드릴 때 온 회중이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일어나고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도 무너지고 무엇이나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고,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 성령으로 되는 일들이 전개되는 이런 예배가 참 예배의 모습이다. 전 세계 교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이런 초대교회와 같은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흩어져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갈 때 이런 예배에 이어서 성도들 각 사람의 위치에서 각 자의 삶을 통해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역사를 이루는 영적인 예배를 드리며 살 것을 성경이 증거 한다.

롬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말씀 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신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은 나 자신이 몸 바쳐서 평생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그러한 헌신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은 우리의 육체 가운데의 삶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되고 능력이 되게 하라는 말씀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보이는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우리 안에 계시는 보이지 아니하는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의 삶이 되게 하라는 말씀이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보이는 몸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시고 그 능력으로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갈2:20절에서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했는데 이는 내가 육체 가운데서 그리스도 안에, 성령 안에 거하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영적 예배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예배도 같은 원리로 성령 안에서 그리고 참 실체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 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수많은 제물을 죽여서 제단에 드린 것을 보게 된다. 또 그림자요, 모형의 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속죄제물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이와 같이 제물의 특징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또 죽게 되는 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롬12:1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을 향해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 한다. 이렇게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한 것은 성도들이 주의 죽으심과 합하여 함께 죄의 사람이 이미 죽었고, 그리고 그의 부활하심과 합하여 부활한. 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롬6:5) 그래서 롬6:13절에서도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몸(지체))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고 말씀 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의 죽으심과 합하여 죽고 그의 부활하심과 합하여 부활한. 산자인 그리스도인은 그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사람이 죽고 그 주님 안에서 살아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육체 가운데서 어떠한 삶을 살든지 모든 일에 피난처와 승리와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 안과 성령 안에만 있음을 믿고 나아가는 그 삶을 통하여 말씀 그대로 역동적으로 실행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놀라운 삶을 펼쳐가게 되는 것이 바로 영적 예배라는 것이다.

이 찬수 목사님이 섬기는 분당 우리 교회의 주차 관리 봉사 하시는 집사님의 예를 소개하겠다. 분당 우리 교회로 출석한지 얼마 안 되어 모든 것이 서먹서먹한 한 여 성도가 어느 추운 겨울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자기 차로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 관리 봉사를 하는 집사님의 안내를 받고 주차를 하고 내려서 보니 뒷바퀴 한 쪽이 공기가 상당히 빠져 있어서 돌아갈 때는 타이어가 주저앉게 될 것을 직감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 봉사하는 집사님이 다가와서 제가 해결해 놓을 터이니 예배를 편안히 드리시라고 공손이 말해주어서 그 여 성도는 바퀴가 계속 걸렸지만 예배를 마치고 주차된 차를 와서 보니 공기로 알맞게 채워 진 바퀴가 잘 셋팅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이 되어서 그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운전석 앞 유리 위에 글이 써 있는 쪽지를 취해서 보니 그 글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자매님 안에 사시고 내 안에 사시는 주님이 사랑하셔서 나를 통해서 하신 것뿐이니 나는 찾지 마시고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였는데 이 여 성도는 이 사실을 메일로 담임목사님께 전했고 이 메일을 설교 시간에 목사님이 소개를 했다.

나도 그 예배에 참석 했었는데 온 회중에 감동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여기에 덧붙인다면 봉사하는 집사님이 주차장이라는 현장 제단에 성령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몸을 던져 산 제물로 올려 드렸을 때에 성령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그 일을 기쁨과 사랑과 지혜로 아름답게 이루게 되니 영적인 큰 감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영적 예배라는 것이다.
Last Edit: 04 Mar 2016 05:07 by lkb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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