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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 (요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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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Dec 2015 17:49 #242 by lkb0129
8절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했다. 이 구절에서 열매를 많이 맺으면 누구나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말씀 한다. 많은 교회들이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제자 양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자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내 제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 다시 말하면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들이 주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가 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훈련이나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너희가 내 안에 거할 때 스스로(절로) 맺어지는 것이라고 말씀 한다. 예수께서 자신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고 하시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스스로 저절로 과실을 많이 맺는 것 같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저절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 한다. 반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시1편에 나무가 때를 따라 풍성히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되는 이 모든 일이 다 형통케 되는 것은 오직 나무가 물이 풍성한 시냇가에 심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나무가 시냇가라 하더라도 뿌리가 뽑혀 있으면 풍성한 열매와 잎사귀는 커녕 다 말라 죽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죽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 항상 거하면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다. 주님 안에 거하면 절로 열매를 많이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한다. 절로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오직 우리가 주님 안에 항상 거해야만 되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해서 이룸을 받고 성취하려면 우리가 주님 안에 항상 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7절애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이라는 말씀에 이어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는 말씀을 덧 붙였다. 이 덧붙인 내용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는 앞의 문장을 강조한 것으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정체되고 안주하는 모습이 아니고 살아 있는 말씀 그대로 역동적으로 실행케 하시는 성령 안에,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희가 주님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게 되고 성취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해 계시는, 말씀을 실제화 시키시는 성령 하나님, 곧 주님의 역동적인 역사로 되는 것이다. 겔36:36,37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같이 이루어 주시기를 하나님에게 구하여야 한다고 기록 되었다. 우리가 주님 안에 항상 거하기만 해도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고 기도의 중요성과 가치를 증거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의 무엇이든지라는 말씀은 너희가 원하는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신다는 것이고 특히 이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도 원하는 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성취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가능한 그 무엇이라도 원하는 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이루시고 응답하시겠다는 것이다. 히11장을 믿음의 장이라 한다. 주님과 그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말씀을 비롯해서 많은 선진들이 이 믿음으로 불가능한 그 무엇이라도 원하는 대로 구할 때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이루시고 성취하신 사실들을 기록한 것이 히11장이다. 이 장에서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고 이룩하신 일들을 기록할 때마다 그 문장 초두에 믿음으로란 말씀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믿음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믿음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이 살아 있는 믿음으로 불가능한 그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이루시는 것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그러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믿는다는 헬라어 단어는 pisteuvw 이다. 요3:16절의 그를 믿는 자마다는 pa'" oJ pisteuvw eij" aujto;n. 이처럼 내가 믿는다. 라는 단어 pisteuvw는 안으로 라는 뜻을 가진 eij"와 함께 숙어로 사용 한다. 이 헬라어 문장을 분석하면 내가 믿는다. 라고 하는 말씀은 내가 나의 전부를 가지고 믿음의 대상과 그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보여 준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그의 말씀 안은, 초월의 하나님 안이란 말인데 그 안에는 완전한 죄 사함 있고, 기도 응답이 있고, 승리가 있고, 지켜 주심이 있고, 부활이 있고, 그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과 같은 동격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 있고, 신적인 삶과 사역을 펼쳐 갈 수 있게 하고, 영생을 비롯해서 부요, 안식, 권능, 존귀와 영광을 무한히 누릴 수 있게 되는데 이 사실을 믿고 주님 안으로 들어가서 그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주님과 그의 말씀 안에서 만이 그렇게 될 줄 믿고 우리의 전부가 주님과 그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서 거할 때 살아 있는 말씀 그대로 역동적으로 실행하시는 내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주님)에 의해서 완전한 속죄, 기도 응답, 승리, 지켜 주심, 주님과 같은 동격의 성품, 예수님과 같은 level의 삶과 사역, 영생, 부요, 안식, 능력, 존귀와 영광 등을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게 하신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주님의 재림으로 천국에서 완성될 것이지만 그러나 지상 현실에서도 첫 열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해서 이룸을 받게 되고, 천국에서 완성될 것들을 현실에서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이 주님 안에 다 있기 때문에 너희가 내 안에,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할 때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나타나고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열매를 맺을가? 또 응답 받는 기도를 하려면 어떻게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을가? 이처럼 삶과 행위를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고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항상 거하고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인 가를 살펴보고 그러한 믿음에 깨어 있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떻게 살고 행하는 것은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갈5:22,23 성령의 열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생한 구원 받은 성도들 대부분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깨어 있는 신앙, 살아 있는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은 있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는데 집중되어 있지 않고 세속적인 것들로 흐트러지고 물들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께서도 눅18:8절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하셨는데 이 문장에 기록된 a\ra라는 헬라어 단어는 의문사로서 질문자의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올 때 주님 안에서는 원한을 풀어주는 그 응답이 있고 그 응답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 안에 끝까지 거하는 살아 있는 그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라고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반문하시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죽은 믿음이란 믿음이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니고 믿음의 역사(살전1:3)가 일어나지 않는 믿음을 말한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대로 열매가 없고, 행함이 따르지 않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러나 많은 열매를 맺고, 행함이 따르고,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믿음은 깨어 있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되고, 행함이 따르게 되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룸을 받게 되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믿음은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약1:5-8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니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 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이므로 무엇에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의 의심하다. 라는 단어 헬라어는 diakrivnw로 dia라는 전치사와 krivnw의 합성 동사로 ~로부터 철저히 분리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절에서 의심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믿음에서 이미 떠난 분리된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런 죽은 믿음으로는 무엇에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마6: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는 말씀은 재물에 연연해서 마음이 그 재물에 가 있는 이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죽은 믿음이고 요일2:15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특히 돈)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란 구절은 하나님 보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돈)을 더 사랑하는 자들로 이들의 믿음도 죽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계3:1,15-16절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많은 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사데 교회는 죽은 교회라 했고,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미지근한 라오디아 교회는 주님이 내치신다고 하셨다. 딤전6: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했다. 위에서 언급한 재물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자, 믿음으로 하지 않은 사데 교회, 그리고 하나님이 내친 미지근한 라오디아 교회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살아 있는 믿음에서 떠나고 분리된(diakrivnw-분리되다) 그 믿음이 죽은 믿음임을 보여 준다.

그러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살아 있는 신앙의 실재는 어떤 것인가? 마5: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했다. 이 구절에 나오는 가난이라는 핼라어 단어는 ptw'co"(프토코스)이다. 신약 성경에는 가난이라는 단어가 ptw'co"(프토코스) 외에 하나 더 있는데 pevnh"(페네스)이다. ptw'co"(프토코스)는 한 푼어치도 없어서 구걸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절박한 자를 말하고, pevnh"(페네스)는 가난하지만 빈궁한 자로서 구걸할 정도의 절박한 상태가 아닌 가난을 말한다. 따라서 마5:3절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한 푼어치도 없는 자를 말한다. 이 말은 영적으로 얼마나 절박한 상태인지를 보여 준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했다. 바울의 이 말은 자신은 영적으로 한 푼어치도 없는 자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이 영적으로 한 푼어치도 없는 자임을 알게 된 성도는 절대 주권자이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이 아니면 티끌만한 것이라도 되지 않고, 한 순간도 살 수 없기에 너무나 절박하고 절실해서 주님만을 사모하며 의지하며 주님만을 구하게 된다. 이런 이들을 말씀 그대로 되게 하시고 실행 하시는 내재하시는 성령 하나님(주님)이 지배하시고 이끌어 주시고 역사 하셔서 이들을 통해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되게 하시니 현실에서도 천국을 이루며 사는 행복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했다.

고전2:2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했고, 빌3:8,9에서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무나 절박하고 절실하게 사모 되었기 때문에 이 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 했다고 했고 그리고 내 주 그리스도를 경험적으로 알고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너무나 절실하게 갈망되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다. 바울은 이렇게 절박하게 주님만을 사모하고 의지하고 주님만을 구하며 살 때 주님 안에 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빌3:9) 이러한 바울의 경우를 보면 절박하게 주님만을 사모하고 의지하며 주님만을 구하는 것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또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 것은 곧 주님만을 사모하고 의지하고 주님만을 구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사도행전적인 역사를 주도적으로 펼쳐 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시편42:1절에서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 했고 시143:6절에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했다. 그리고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라고 시119:131에서 말씀 한다. 다윗이 목마른 사슴처럼, 그리고 마른 땅 같이 너무나 절박해서 주님과 그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고 구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다윗은 하나님 안과 그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산 믿음이 있는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므로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더 나아가서 유다 왕국이 전무후무한 황금시대를 이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곧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을 때는 범죄 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결론;

로이드 존스 목사는 현대는 성령을 무시하는 시대라고 했다. 이 말은 현대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 하나님 보다는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를 더 앞세우고 그것들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잠재하게 된 사실을 지적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현대 교회와 성도들 대다수는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를 성령 하나님 보다 더 앞 세우므로 성령 하나님을 소멸하고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로 인해서 주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믿음에서 떠난, 분리된 죽은 믿음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말씀 그대로 역동적으로 되게 하고 실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역사할 수 없게 했다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 성도들 모두가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를 앞세우고 그것들로 물들어져 있는 우리의 모습들을 낱낱이 자복하고 돌이켜서 자신은 영적으로 한 푼어치도 없는 자임을 말씀대로 깨닫고 절대 주권자이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이 아니면 티끌만한 것이라도 될 수 없고, 한 순간도 살 수 없기에 너무나 절실해서 주님만을 사모하며 의지하며 주님만을 구하는 신앙 곧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늘 거하는 살아 있는 신앙, 깨어 있는 신앙으로 나아갈 때 살아 있는 말씀 그대로 역동적으로 되게 하고 실행하시는 내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음의 성도들을 통해서 사도행적적인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이 사도 행전적인 역사는 성령 강림이 임박한 때에 예수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들고 그 말씀 안에 거하면서, 주님 곧 성령 강림을 너무나 절실하게 사모하며 간구하는 120명에 의해서 일어났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모든 교회가 죽어가는 이 시대에도 이러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부담감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바라기는 이 시대에 이러한 사도행전적인 부흥의 근원지가 여기 모인 여러분이 되어서 미국에 있는 교회를 비롯해서 전 세계 교회로 확산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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