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Dec 2015

내 마음에 가득찬 기쁨과 평안

하수연 자매

우리 집은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 저는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엄마를 따라 성당 마당에서 자라고 컸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서는 성당도 발길을 끊게 되었고 철학을 공부하며, 신이란 인간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생각으로 기독교나 천주교 모두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결혼 후 남편과 무작정 미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유학 생활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정작 하고 싶은 공부는 뒷전이 되었고, 미국에 온 지 일 년 만에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온종일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남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만을 기다렸고, 만나는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작은 집이 나와 아들에게는 세상 전부처럼 느껴지던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살아오며 제가 처음 만난 고난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는 남편은 저에게 집에서 벗어나 가까운 교회에 나가 사람을 만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성당이 전부였던 저는 선뜻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종종 대학 시절 길에서 붙들고 끈질기게 전도하던 사람들이 생각나 그런 교회 사람들과는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단절된 외롭고 어두운 터널 같던 미국 생활이 3년이나 흘러갔습니다.

그 무렵 한국인이 더 많은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었지만, 애써 한국 사람들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아주머니가 주보를 건네주며 꼭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냉랭한 저의 반응에도 아주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녁 식사에 초대하시고, 김치도 싸다 주시고, 비상약을 챙겨주시며 끊임없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 무렵 저는 바뀐 전공 공부와 외로운 미국 생활로 많이 지쳐 있었던 시기라서 항상 밝고 즐거워 보이는 옆집 아주머니의 비밀이 궁금해졌습니다. 궁금증의 답을 찾기 위해 저는 교회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교회를 찾은 첫 주일, 성당의 미사와 다르지 않은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는 저에게 ‘다리예화’라는 수업의 실습 대상이 필요하시다며, 차근차근 성경 구절을 읽어줬습니다. 죄인 된 우리와 하나님과의 단절, 그리고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네” 라고 대답은 했지만, ‘이게 전부인가? 이렇게 쉬운 건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목사님은 로마서 5장 8절 말씀으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설교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천국의 소망을 갖고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 제 마음에 그동안 높이 쌓였던 벽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제가 정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 죄가 낱낱이 드러나며 저를 감싸고 있던 교만이 벗겨짐과 동시에 하나님이 예수님의 보혈로 저를, 저의 죄를 덮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해 고통을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한번에 “믿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비로소 진정으로 예수님을 내 마음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저는 그전과는 조금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제 뜻대로 삶을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면, 영접 후에는 제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제 삶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정은 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패배감, 좌절감,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고난의 시간으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했고, 그 자유의 틈 사이로 삶의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저는 유학생이었고, 날마다 써야 할 논문에 묻혀 날을 새야 했으며, 동시에 엄마이자, 아내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29장 11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그러한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s나를 향한 목적이 분명히 있으시리라는 확신이 생겼고, 분명 고난의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빡빡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지만, 세상이 저에게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제게 믿음의 동역자들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분들은 단지 그리스도 안에 함께 있는 지체라는 이유만으로 외로운 저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돌봐 주었습니다. 외롭고 어둡던 저의 삶을 예수님은 밝고 따뜻한 사랑의 온기로 구석구석 가득 채워줬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저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그로 말미암아 저는 죄 사함을 받았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저를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그 생명의 보혈로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는 천국의 소망을 품고, 복음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며 살아가겠습니다.
Last modified on Monday, 21 December 2015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