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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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

비움이란 자기를 내려 놓는 삶입니다. 무성한 봄과 여름의 신록도 아름답지만 가을날 성숙한 단풍으로 타오르다가 겨울 바람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낮게 내리는 낙엽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비움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채움을 배워가고 더욱 더 채우려고 달려갑니다. 많이 채운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비움이란 익숙한 단어가 아닙니다. 자기를 내려 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움이 깊어질수록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잎이 무성한 여름에는 보이지 않던 마을이 마른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비움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창입니다. 

비움이란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삶입니다.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사마천처럼 오직 책상 앞에서 한 생애를 치열하게 보낸 사람의 진정한 자유를 엿보게 하는 제목입니다. 자유란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집착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어딘가에 노예로 살아갑니다. 집착은 얻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잡으려 하는 것이 없으면 잃을 것이 없고 두려워 할 것도 없어집니다. 걱정, 불만, 불평, 미움, 시기, 원망의 감정은 사람을 노예로 만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쁨도 자유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면 죽음의 세력에서 자유를 얻고 내 속에 예수님의 영이 지배하면 더 채울 것이 없습니다.

비움은 채워진 사람에게 나오는 삶입니다. 진정한 비움은 없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한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한 사람은 끊임없는 영적인 갈망이 있을 뿐 세상의 다른 것들로 대신 만족하지 않습니다. 맑은 호수가 큰 산을 고스란히 담아내듯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을 다 담습니다. 겨울 하늘을 밝히는 별들, 찬 바람을 묵묵히 이겨내며 어둠을 밝히는 달빛, 세찬 바람에도 어린 아이들 소리치며 뛰놀게 만드는 햇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에 감사가 넘칩니다.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비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고 천국을 누리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늘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먼지 나는 유대 길을 걸으신 예수님, 하나님의 본질을 비우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 비어 있는 영혼에 찾아오셔서 넘치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시는 우리 예수님, 참 고맙습니다. 올해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두고 모든 것을 흘려 보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겨울은 비움을 가르쳐 주는 좋은 선생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류응렬